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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3/23 페라디와 포르쉐의 역사 by 아트루팡


 

스포츠카의 사전적 의미는 ‘명확한 정의는 없으나 거주성과 경제성보다 주행 성능을 중시한 설계로 되어 있는 자동차. 실내의 넓이나 승차감보다도 중심이 낮거나 공기저항이 적은 쪽이 선택된다. 엔진도 파워나 가속성이 중시된다’이렇게 나와 있다.


이처럼 스포츠카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어느 누구도 명확하게 답할 수 없다. 최고출력이 무조건 높은 차라고 스포츠카라 할 수 없고 그렇다고 쿠페나 컨버터블처럼 스타일이 멋진 차만을 스포츠카라고 부르지 않는다. 90년대만 해도 200마력이 넘는 차를 스포츠카로 칭하기도 했지만 요즘은 웬만한 세단의 성능도 200마력을 넘나든다. 그리고 쿠페나 컨버터블이 모두 스포츠카는 아니다. 경차에서도 컨버터블이 있고 소형 세단을 베이스로 만들어진 쿠페도 있기 때문이다.


한 단어로 정의하기 힘든 무엇인가가 스포츠카에 있다. 운전자와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차. 자동차가 낼 수 있는 극한의 성능을 운전자에게 충분히 전달하고 운전자는 그 성능을 십분 활용할 수 있는 교감, 제원상의 마력이 아니라 손끝과 발끝에서 느껴지는 짜릿한 전율, 0/1초의 시간을 왔다 갔다 하는 스피드의 정점 이러한 것들이 인간으로 하여금 좀 더 빠르고, 좀 더 안정적인 감각의 차를 만들게 하고 누구에게나 꿈의 자동차로 자리잡는 것이 아닌가 싶다.


스포츠카의 기원을 살펴보면 자동차 경주를 빼놓을 수 없다. 모터 스포츠를 통해 자동차는 점점 더 고성능화 되었고 그것은 바로 스포츠카의 기본 요소이기 때문이다. 최초의 자동차 경주는 1895년 6월 파리-보르도-파리 1,179km 구간에서 행해졌다. 그때 우승한 차는 평균 시속 20km/h. 경주에서 우승한 차들이 인기를 얻었기 때문에 모든 메이커는 빨리 달리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이 때문에 처음부터 스포츠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당시의 차들은 대부분 스포츠카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이때 초기 자동차는 기술적으로 미숙한 부분이 많아 성능에만 초점을 맞춰 개발한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스포츠카라는 개념이 자리잡은 것은 자동차가 대중화된 뒤의 일이다. 도구로서의 자동차가 대중화되면서 드라이빙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개념의 차가 전문분야로 굳어졌다. 대부분의 스포츠카는 레이스 트랙에서 달리던 모습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레이스에 대한 규정이 확립되지 않았던 1930년대까지만 해도 스포츠카와 경주차의 경계가 애매했다. 자동차가 다양한 모습으로 분화하면서 스포츠카 역시 범위를 넓혀 왔다. 이런 배경 탓에 최근까지도 스포츠카의 개념은 정확하지 않았다. 레이싱 머신과 승용차 중간에 존재하는 것 정도로 모호하게 정의를 내리는 수준이었다. 그만큼 스포츠카는 종류가 다양하다.
그 이유는 스포츠카의 기준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흔히 수퍼카에 대한 분류는 쉽게 되지만 스포츠카의 기준은 뚜렷한 것이 아니다. 특히 GT라는 차종이 등장하면서 더욱 스포츠카의 기준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GT라는 이름은 그랑 투리스모(Grand Turismo)라는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영어로는 그랜드 투어링 원래는 장거리 여행에 적합한 안락성과 거주성을 가진 운전자 중심의 차를 가리켰다. 성능향상에 초점을 두어 지금은 GT라 하면 안락성을 겸비한 스포츠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최근에는 GT 선수권이라는 경기를 위해 메이커들이 경주만을 위한 차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GT의 본래 의미가 또 달라지고 있다.


GT가 등장하면서 스포츠카에 고성능 승용차의 개념이 더해졌다. 스포츠카에 안락성을 추구하는 흐름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했다. 정통 스포츠카라고 하면 AT는 물론 없어야 하고 에어백, ABS는 찾아 볼 수 없고, 좁은 실내 등 불편하지만 달리기 성능은 뛰어난 차, 조금 불편한 것이 오히려 멋이 되고 자부심으로 느끼었다.
그런 경향이 급속하게 바뀌어 가고 있다. 금기시 되어 왔던 편의장비들이 하나둘 더해지고 있는 것이다.  페라리가 F355에 세미 오토매틱 시스템을 더한 F1 버전을 발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전까지는 스포츠카만이 지니는 거친 세계를 동경하던 오너들의 성향이 바뀌어 보다 안전하고 쾌적한 스포츠카를 원하게 되었다. 소위 신세대 드라이버가 늘어나면서 나타난 변화다.


그렇다고 아무 차나 스포츠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벤츠 S 클래스나 BMW 7시리즈가 웬만한 스포츠카를 무색케 할 정도로 성능이 높다고 해도 스포츠카라고 부르지 않는다. 스포츠카의 범주가 넓어졌다고 해도 보통 승용차와 구분되는 명확한 경계가 있기 때문이다.


스포츠카의 기본설정은 운전자를 중심으로 하는 차라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스포츠카들은 2인승에 국한된다. 설령 시트가 4개 달렸다고 해도 뒤 시트는 +2의 개념이 강하다. 이는 거주성과 안락성이 아닌 달리기 성능과 조종성(핸들링)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스포츠카의 조종성은 조작 편의성과 다른 뜻이다. 이는 운전자가 원하는 선을 정확히 그리면서 나아가는 빈틈없는 차체거동을 의미한다.


스포츠카에서 말하는 운전의 즐거움은 드라이빙에서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엔진음과 배기음 등 청각적 요소는 물론이고 서스펜션의 진동이나 스티어링 휠의 반발력, 클러치와 브레이크 혹은 액셀러레이터 페달의 감각까지 포함한다.
스포츠카의 개념은 시대가 바뀌면서 더욱 넓어졌다. 이는 모든 승용차가 운전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을 뿐 아니라 기술수준이 높아진 덕분이다. 그 결과 스포츠카와 승용차의 경계에 선 모델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우선 누구도 스포츠카로 부르는데 이의를 달 수 없는 페라리와 포르쉐의 각기 다른 방향 추구에 대해 알아보자.

 

 

1950년대


 

 
페라리 166 (1948-1950)
페라리를 본격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모델로 여러 경주에서 우승함으로써 가장 큰 수출국인 미국, 영국을 포함하여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었다. 또한 유명 코치빌더들이 이 차의 섀시 위에 바디를 작업하여 더욱 가치가 높아진 모델이다.
알파로메오 레이서로 활약하던 엔초 페라리는 알파로메오를 떠나면서 자신만의 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페라리라는 이름 대신 '오토 아비오 코스트라지오네(Auto Avio Costrazione)'라는 이름으로 활약했으나 전쟁이 끝난 직후 1947년부터 125 모델에 페라리 이름과 엠블럼을 쓸 수 있게 되었다.
1948년부터는 1500cc에서 2000cc로 배기량을 늘려 타입 166(Type 166)을 제작하였고, 이 모델로 페라리는 유명해졌다. 스파이더 코사(Spider Corsas)라고도 불렸던 초기 166 모델은 사이클 윙에 도로 주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장비만 갖춘 소형 2인승 자동차였다. 그래서 하루는 스포츠카 경주에 출전했다가 다음날에는 헤드램프와 펜더만 떼어내서 포뮬러 2(Formula 2) 경주에 내보낼 수도 있었다. 또 다른 166은 '스포츠(Sport)'였는데, 단 두 대의 시범차만으로 모터 스포츠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한 대는 오픈 스포츠카로 타르가 플로리오에서 우승했고, 다른 한 대는 쿠페 타입으로 밀레 밀리아에서 우승했는데, 드라이버는 클레망 비온데티였다. 이리하여 전 세계에서 주문이 쏟아졌다.
밀레 밀리아에서 우승한 1949년형은 특별히 166MM(Mille Migilia)이라 이름 붙여 우승을 기념했다. 그리고 코치빌더인 밀라노 투어링(Touring of Millan)과 합작해 '작은 배(Barchetta)' 모양의 바디를 얹은 166MM을 한정 생산했는데, 이 2인승 스포츠카는 스타일이 우아했을 뿐 아니라 당대 최고급 스포츠카의 하나이다. 1949년 166MM은 타르가 플로리오, 밀레밀리아, 르망 24시간 경주, 스파 24시간 경주를 비롯해 각종 경주를 휩쓸면서 향후 가장 큰 수출시장이 될 영국과 미국에 페라리의 명성을 날렸다.
한편 페라리의 성능에 훌륭한 안락함까지 원하는 고객들을 위해 166 인터(166 Inter)를 출시했는데, 이 모델은 쿠페형 보디를 얹도록 설계된 섀시로서 이탈리아 최고의 코치빌더들이 작업하였다. 비날리, 투어링, 기아, 베르토네, 파리나 등 유수의 코치빌더들이 모두 166 인터 섀시 위에 보디를 제작하여 얹음으로써 그란 투리스모(Gran Turismo)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가치있는 최고의 차를 만들었다. 사람들은 166을 스포츠카로 많이 기억하지만 그 뿌리는 고성능 12기통 엔진에서 비롯된 만큼, 166 엔진은 1인승 포뮬러 2 경주에서 꾸준히 우승을 안겨 주었고 대부분의 자동차 회사들이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경주에서의 성공'과 '판매에서의 성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었다.
 

 
포르쉐 356 (1950-1965)
폴크스바겐 비틀을 계승하여 탄생한 차 - 전후 스포츠카 수요에 부합하여 큰 인기를 누렸다. 끊임없는 개선으로 지속적인 발전을 이룬 포르쉐사 첫 양산모델.
폴크스바겐을 디자인했던 페르디난트 포르쉐(Ferdinand Porsche) 박사는 1938년형 VW을 기초로 64형이라는 시험용 차를 제작했다. 이 차는 베를린-파리-베를린 경주에 출전하려 했지만 전쟁으로 취소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프랑스에서 작업하던 포르쉐박사는 1947년 아들 페리(Ferry)와 전에 함께 일하던 직원들을 모아 설계팀을 만들어 오스트리아의 조그마한 마을에서 소형 스포츠카를 만들기 시작했다.
1948년3월 VW을 기초로 차대번호 356/001인 첫 시작차가 완성되어 시험에 들어갔으며, 그 즈음 페리가 설계한 001을 포르쉐박사가 약간 수정한 두 번째 차 356/2도 이미 완성되었다. 강력 압축 강철 섀시를 사용하고 엔진을 차 뒷부분에 장착한 356/2는 포르쉐사의 첫 양산 모델로 1947년 말부터 쿠페를 만들기 시작하여 1948년 초부터 판매하였다.
356/2는 비틀의 엔진, 변속장치, 조향장치를 장착했고 실내도 VW의 장식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차체는 다르게 만들었다. 제작팀은 우스개 소리로 '목욕통'처럼 생겼다고 이야기했지만, 멋진 스포츠카에 굶주린 유럽에서는 대환영이었다.
356이 성공하면서 수작업으로는 작업량을 감당할 수 없어 1950년 포르쉐는 전쟁 전 설계 작업실이 있던 슈투트가르트로 돌아갔다.
점차 미국이 포르쉐를 주목하게 되었다. 포르쉐는 1952년 미국 시장을 겨냥한 아메리칸 로드스터를 만들었고, 이것은 1954년 스피드스터로 이어져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포르쉐 엔진은 끊임없이 발전되었다. 1948년 356/001에는 4,000rpm에서 40마력을 내는 1131cc 엔진, 1953년에는 110마력을 내는 1500cc의 강력한 547형 엔진이 장착되었고, 마지막 모델인 1963년형 356C SC는 5,800rpm에서 95마력을 내는 1582cc 엔진이 장착되었다. 356시리즈 중에서 가장 강력한 차는 6,200rpm에서 130마력을 내는 1966cc엔진의 1963년형 356C 2000 GS 카레라2 GT였다. 또한 엔진 개발을 계속하면서 차체는 더욱 깔끔하고 편안해졌고, 브레이크와 핸들링도 개선되었다. 1955년에는 차체를 업그레이드해 356A형으로 바꾸었는데, 356시리즈가 인기를 끈 비결은 아마도 이러한 끊임없는 개발 노력 때문인 듯 하다.
알로이 욕조로부터 출발하여 세계적인 고성능차를 만들기까지, 몇몇 숙련공들의 작업실에서 세계 굴지의 자동차회사를 이루기까지 단 17년의 세월이 걸렸을 뿐이었다. 포르쉐박사 개인의 명성에 필적할만한 포르쉐 스포츠카의 명성을 쌓게 한 것이 356이었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1960년대
 

 
페라리 250GT 숏 휠 베이스 (1959~1962)
많은 페라리 차들이 그렇듯이 250 GT SWB 베를리네타의 이야기도 경주 우승에서부터 시작된다. 1952년 밀레밀리아 경주에서 죠반니 브라코(Giovanni Bracco)는 2.9리터 V12엔진을 장착한 새로운 250 GT 스포츠카를 운전하여 페라리에게 이 경주에서의 5번째 우승을 안겨 주었다. 페라리는 `MM'을 차이름 뒤에 붙인 양산차를 내놓아 밀레밀리아에서의 승리를 축하했다.
250 MM 은 1952년 후반 컨버터블을 선보였고, 1953년 봄 제네바 모터쇼에서 250 MM 베를리네타 하드탑을 선보였다. 완벽한 아름다움을 갖춘 실용적인 이 스포츠카가 바로 페라리의 위대한 250 GT로 가는 출발점이었다.
250 GT 는 1954년 후반 파리 모터쇼에 등장하였다. 250 GT의 쿠페형 보디는 튼튼한 튜블러 프레임 섀시 위에 얹혀졌다. 앞에는 독립 현가 서스펜션을, 뒤에는 리지드 액슬 (일체차축식)을 사용했다.
1955년 국제경기규정에 그랜 투리스모 클래스가 신설되어 최대 3.0리터까지 경주가 가능하게 되자 250 GT도 3.0리터 V12엔진을 채택하게 되었다. 1955년 12월 스페인 출신 알폰소 드 포르타고가 나쏘(Nassau) GT경주에서 우승함으로써 250 GT의 화려한 명예의 행진이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250 GT 는 아마추어들에게 유명한 뚜 드 프랑스(Tour de France) 경주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는데 1956년부터 64년 사이에 9번이나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새로운 지배자가 선을 보였다. 휠 베이스가 94.5인치(2.4미터)로 짧아진 250 GT SWB 베를리네타였다. 약 200대 정도 생산되었는데, 몇 대는 경주차 사양으로 중량을 줄이기 위해 경합금으로 만들어졌다.
250 GT SWB는 1961년 르망 경주에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프랑스의 노벨과 기셰가 4,258km를 평균 시속 177.417km로 달려 3위를 차지했는데, 24시간 경주에서 나쁜 성적은 아니었다.
이후로 250 GT SWB는 애스턴 마틴, 재규어, 포르쉐를 꺾었고, 아마추어와 프로를 불문하고 거의 경쟁상대가 없었다. 이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었던 유일한 차는 이 차의 뒤를 계승한 무적의 250 GTO밖에 없었다.
 

 
포르쉐 911(1963~1998)
1948년 선보인 포르쉐 356은 처음에는 폴크스바겐 비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아 탄생했지만, 후일까지 변하지 않은 특징으로는 트레일링 링크 프론트 서스펜션과 공냉식 4기통 엔진을 차 뒤에 장착한 정도일 뿐이며, 엔진은 4캠 2리터 엔진을 장착한 카레라가 등장하면서 원래의 1.1리터 오버헤드 밸브 엔진과는 완전히 격이 달라졌다.
포르쉐가 356을 이을 차량의 컨셉트를 정하는 것은 회사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사안이었다. 포르쉐의 전통이자 개성인 리어 마운트 공냉 엔진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나, 고급 시장으로 진출하여 페라리, 마제라티, 애스턴 마틴 등과 겨루는 것은 별로 현실성이 없어 보였다.
부치(페르디난트 포르쉐의 손자)는 2,200m의 휠 베이스 위에 얹을 차체 디자인에 착수했는데, 포르쉐의 카리스마가 반영된 것은 물론이다. 뒤는 패스트백으로, 앞 끝 부분을 낮게 가져가고 좌석은 2+2로 배치했다. 그리고 전륜 서스펜션은 트레일링 링크 시스템에서 현대적인 맥퍼슨 방식으로 대체되었다.
1963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데뷔한 새 모델 901은 처음에는 큰 반응을 얻지는 못하였다. 후일 901은 911로 이름을 바꿔야 했는데, 이미 푸조가 가운데에 0이 들어가는 3자리 숫자를 차 이름으로 쓸 권리를 독점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낮은 웨이스트 라인과 넓은 유리창을 채용한 현대적 디자인에 대해 뒤섞인 반응을 보였다. 엔진은 130마력으로 당대 최강이던 356 카레라의 2리터 엔진에 비해 출력이 향상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1964년 양산에 들어가기도 전부터 이미 단순한 새 모델 그 이상의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체인 구동식 오버헤드 캠 샤프트의 2리터 공냉식 대향 6기통 플랫엔진은 최신 기술이었다. 경주에서 사용된 적이 없는 이 엔진의 채용은 포르쉐로서는 전통에 반하는 것이었다. 911이 도로에서 진정한 스포츠카의 원형으로 자리잡으면서 많은 운전자들이 911로 도로를 메웠다. 911은 매년 경주를 통해 새로운 버전을 내놓았고 또 다른 발전을 위해 계속 경주에 참가했다.
1964년부터 양산 마지막 해까지 911은 매년 빠짐 없이 르망 24시간 경주에 출전하여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록을 남겼다. 오늘날 수집가들은 911 초기 모델을 클래식으로 분류하고 한대라도 더 찾기 위해 고투하고 있다. 35년이라는 양산기간 동안 오직 911의 이름과 기본 형태와 카리스마 만큼은 변함없이 지속되었다.
911은 광범위한 대중적 인기와 수십만 대 이상의 판매량으로 인해 희귀한 클래식 스포츠카로 여겨지지는 않지만, 세계에서 가장 널리 보급된 독특하고 전문적인 스포츠카로 자리잡았고 이는 단일 모델에 대한 열정과 다양한 변형 모델 각각에 대한 차별성이 더해진 결과이다. 911과는 개념이 다른 포르쉐의 다른 많은 스포츠카들 중 어느 것도 911과 같은 지위를 누리지는 못했다.
 
 
1970년대
 

 
페라리 512 BB(1971~1981)
1971년 토리노 쇼의 피닌파리나 부스에는 페라리 복서라는 특이한 이름의 프로토 타입이 등장했다. 페라리의 신세대 미드십 모델로서 무엇보다 새 엔진이 주목받았다. 실제로는 180도 V12 엔진이었지만 형태는 수평대향과 같기 때문에 수평대향 엔진의 별칭인 복서로 불린 것이다.
이 엔진은 365GT4/BB에 처음 쓰인 후 1976년 등장한 512BB로도 이어졌다. 68년 등장한 컨셉트카 P6를 빼어 닮은 보디 라인은 당시로도 혁신적인 것이었다. 낮은 보닛에 리트랙터블 헤드 램프가 달렸고 뒷바퀴 앞에 달린 작은 NACA 덕트가 미드십 구성임을 보여준다.
엔진은 180도 V12 5.0리터 DOHC 360마력을 얹었다. 512이라는 이름은 5.0리터 V12를, BB는 베를리네타 복서를 의미한다.
 

 
포르쉐 924 (1975-1985)
1970년대 석유파동이 닥치고 914의 판매가 부진해지자 포르쉐는 더 이상 값싼 스포츠카가 팔리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특히 911의 장래까지도 불확실해진 상황에서 포르쉐는 설계만 하고, 생산, 판매는 폴크스바겐에 맡기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해서 VW 밴과 아우디 100에 사용된 연료분사형 2리터 엔진을 탑재하고, 폴크스바겐의 기타 부품을 사용하여 1975년 발표된 포르쉐 924는 즉시 성공을 거두었다. 요란한 엔진은 5단에서 200km/h의 최고속도를 냈고, 중량이 고르게 분포되어 안전하게 균형잡힌 조종성을 보장했다.
1979년 KKK 터보차저를 채택하여 선보인 924 터보는 170마력의 힘을 뿜어내 고성능 이미지를 확실히 다지게 되었다. 최고속도도 226km/h로 향상되었고, 6.9초만에 96km/h를 내는 가속력은 수퍼카급에 이르게 되었다. 1980년대에 924 기본형에 4기통 2.5리터 포르쉐 엔진을 탑재한 944가 출현함으로써 폴크스바겐 밴의 영향에서는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다.
 
 
1980년대


 
페라리 테스타로사 (1985-1996)
이탈리아어로 '붉은 머리' 라는 뜻의 '테스타로사'는 12기통 엔진의 헤드를 붉은색으로 칠한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페라리 512BB(1976-1983)의 성공에 힘입어 등장하게 된 테스타로사는 1984년 파리모터쇼에 첫선을 보였다. 1957년 발표된 250GT의 모습을 변형하여 피닌파리나가 디자인한 작품으로 1985년부터 양산하기 시작해 십 수년간 페라리를 대표하는 차의 자리를 지켰다.
양 옆에 길게 갈고리 모양으로 나 있는 공기흡입구가 아주 인상적인데, 이것은 흡입구와 그릴을 통해 들어온 공기가 합쳐져 중앙에 배치된 엔진까지 전달돼서 냉각작용을 돕는 역할도 하지만 람보르기니 카운타크를 의식해서 경쟁적으로 의도된 전략적 스타일이기도 하다.
각 실린더마다 4개의 밸브가 달린 미드십 V12기통(180) 엔진은 테스타로사를 당당하게 수퍼카 반열에 올려놓은 주인공인데, 이전 엔진들보다 출력이 40마력이나 높은 290마력의 힘을 낼 수 있고, 휠베이스를 50mm 늘려 실내 공간도 넓어졌으며, 짐을 싣는 공간도 넓은 것이 특징이다.
엔진 헤드에 붉은색을 칠한 것을 비롯해 미국인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노력한 흔적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512BB의 단점이었던 배기가스 문제를 개선했고, 충돌시험 또한 미국 국가 규격을 통과하도록 제작하는 등 운전하기 편하고 안전한 차를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1991년부터 성능을 한층 개선하여 512TR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되었으며, 95년부터 1년 동안 F512 M으로 500대 한정 생산한 후 단종되었다.



 
 
 
포르쉐 959 (1987-1988)
2.85리터 수평대향 6기통 엔진, 가변토크분배 방식의 상시 사륜구동, 6단 기어박스, 전,후 더블 위시본 방식 서스펜션과 자동 차고 조절, 바퀴 한 개당 두 개의 쇽 업서버, 공기저항계수(cd) 0.32에 부양 방지를 위한 보디형태....포르쉐의 신기술이 총 집약된 수퍼카(베이스는 911)
1980년대 중반 이후, 서유럽 경기가 상승세를 지속하며 많은 사람들이 부를 축적했다. 자동차 회사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새로운 타입의 수퍼카들을 속속 발표하기 시작했다. 페라리 GTO와 테스타로사, 람보르기니 카운타크 5200 콰트로 밸브, 애스턴마틴 반타지 등 만만치 않은 차들이 출시되거나 시장 진입을 앞두고 있었다. 포르쉐로서는 결코 가벼이 볼 만한 상대들이 아니었다. 드디어 1987년 그룹 B 959가 수퍼카의 반열에 올랐다.
포르쉐는 1983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 911을 베이스로 한 '그룹 B 스터디'를 내놓았다. FIA 규정상 그룹 B에 속하는 차는 최소 200대 이상 양산되어야 했는데, 그렇다고 이 '스터디'가 곧바로 양산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파리-다카르 랠리 출전을 위한 경주차 개발과 또 다른 프로젝트 등으로 인해 959는 1987년에야 비로소 양산라인에 얹힐 수 있었다.
보디는 강성이 뛰어난 케블라 소재를 사용했다. 엔진을 뒤에 얹으면 정면충돌 시 위험하다는 근거없는 세간의 기우에 맞서 공개적으로 정면충돌 시험을 실시함으로써 의심을 불식시킬 수 있었다
엔진은 그룹 C에서 활약하던 956과 962C에 얹혔던 935/76 엔진을 기본으로 개발되었다. 포르쉐 전통의 공냉식 플랫 6 엔진과 대별되는 점은 실린더 헤드에 수냉식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여기에 복합 터보차저가 장착되었다. 959에 사용된 복합 터보차저는 1987년 당시로서는 매우 진보된 기술로 터보 기술사에 한 획을 그을만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복합 터보차저는 두 개의 터빈을 사용한다.
엔진 회전수가 약 4,200rpm에 이르기까지는 첫 번째 터빈만 작동되는데, 이 때는 6개 실린더에서 배출되는 배기 가스를 사용한다.
약 4,200rpm부터 두 번째 터빈도 같이 구동되는데, 이 경우에는 각 뱅크의 3개 실린더에서 나오는 배기 가스가 터빈 하나씩을 구동하게 된다. 복합 시스템이 아닌 싱글 터빈을 사용한다면 싱글 터빈의 용량은 복합 시스템에서 쓰이는 터빈 두 개 중 하나보다는 용량이 크고 두 개의 용량을 합한 것보다는 용량이 작을 것이다. 싱글 터보를 사용한다면 저회전 시 충분한 부스트압을 얻기까지 어느 정도의 타임 래그가 발생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또한 고회전 시에는 배기압이 너무 높아 싱글 터빈의 효율성이 저하된다. 복합 터보차저는 배기가스를 효율적으로 배분, 사용함으로써 저속 시 타임 래그가 적으면서도 충분한 토크를 얻으며, 고속 시에도 최적의 압축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3단 90km/h 속도에서 쓰로틀을 급격히 열면 2초 내에 부스트압이 1.0바(14.2psi)까지 급상승한다. 같은 용량의 단순 트윈 터빈으로 1.0바의 부스트압을 얻으려면 6.5초가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기술의 진보이다. 엔진은 450마력의 출력을 내는데, 레이싱 버전은 간단한 변경만으로 내구성에 손상없이 쉽게 600마력까지 낼 수 있다.
959는 911과 별다르지 않은 6단 트랜스미션에 가변 토크분배 방식의 상시 4륜 구동방식을 사용한다. 스티어링 휠 밑의 레버로 4 가지 모드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트랙션' 모드는 비상용으로 깊은 눈, 진흙 등에서 탈출할 때 사용한다. '아이스+스노우' 모드는 전, 후 토크 분배가 40:60으로 고정된다. '레인' 혹은 '드라이' 모드에서도 토크배분은 기본적으로 40:60이지만 차량의 동적 특성 변화에 따라 자동적으로 전, 후 토크배분이 이루어진다. 최대 배분비는 전:후 20:80이다.
서스펜션은 전후 모두 더블위시본 방식을 사용했으며 휠 하나당 두개의 댐퍼가 적용되었다. 자동, 수동으로 차고를 조절할 수 있다. 기본 차고는 12cm이다. 험로에서는 15-18cm로 차고를 높일 수 있다. 차의 속도에 따른 자동조절 기능도 갖추고 있다.
959 개발 당시에는 시속 300km를 넘는 로드카에 장착할 만한 타이어 자체가 없었다. 경주차용 타이어가 있긴 했지만 로드카에 적용하기에는 많은 문제가 있었다. 이러한 요구에 맞추어 개발된 던롭사의 'Denloc' 타이어가 사용되었다. 이 타이어는 공기가 빠져도 적당한 속도로 150km를 아무 문제 없이 주행할 수 있는 제품이다. 전륜에는 235/45 VR 17, 후륜에는 255/40 VR 17 타이어를 사용한다.
911 패밀리 중 가장 빠른 차이자 가장 무거운 차이기도 한 959의 브레이크 성능이 좋아야 함은 당연한 과제였다. 대형 디스크가 전후에 장착되고 이를 4 피스톤 알루미늄 캘리퍼가 뒷받침했다. '스포츠' 버전에는 구멍난 디스크가 사용되고 로드버전에는 일반 벤틸레이티드 디스크가 사용되었다. 여기에 전자제어 ABS를 장착하여 탁월한 제동능력을 지녔다. 건조한 아스팔트 노면을 300km/h의 속도로 주행하다 감속했을 때 평균 1.27g의 측정치를 보인다.(g는 '중력'을 나타내는 단위로 자동차의 코너링, 가속, 감속 등의 능력을 측정하는 척도이다.)
959는 단순한 경주차의 도로 버전이 아닌 최고의 스포츠카를 목표로 개발되었다. 후륜구동보다 코너링 속도가 떨어지는 4륜구동을 선택한 것은 올로드카를 지향하고 있음을 보여주며, '레이서'가 아닌 '드라이버'를 배려한 점이 인테리어를 비롯해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959는 포르쉐 기술 역량의 정수를 보여주는 탁월한 예로서 모두 283대가 생산되었다.
 
 
1990년대
 
 
 
 
페라리 F355 (1995-1999)
배기량이 작아 리틀 페라리로 분류되는 F355는 F1기술인 5밸브 시스템을 응용하여 작지만 강한 힘을 내는 차이다. F355에서 마지막 숫자 '5'가 뜻하는 의미가 무엇일까? 앞에 있는 숫자 '35'는 3.5리터의 배기량을 의미하는 것이며, 끝 숫자 '5'는 실린더 당 밸브 수를 뜻한다. F1 머신에 주로 이용되는 5밸브 시스템이란 흡기밸브의 수를 늘려 (배기2개 흡기3개) 출력과 엔진의 효율을 동시에 높여 최고의 성능을 내는 방식으로 F355의 경우 실린더 1리터 당 109마력의 힘을 내는 최상위급에 속한다.
F355의 성능을 나타내는 수치를 살펴보면 시속 100km에 도달하는데 걸리는 가속시간은 4.6초, 400m에 도달하는 시간은 13초이며, 최고속도는 시속 295km이다.
F355는 지붕의 형태에 따라 베를리네타, GTS, 스파이더 등 세가지 종류가 있다. 전통적인 쿠페형을 베를리네타라고 부르며, 좌석 뒤에 넣을 수 있는 타르가 탑을 장착한 형태가 GTS, 페라리 중 처음으로 전동식 소프트 탑을 적용한 컨버터블이 스파이더이다.
1998년에는 세미오토 변속기를 적용한 F355 F1을 발표하여 가족이 넷으로 늘었다. F355는 페라리 중 진정한 의미에서 다목적 성격을 지닌 차이다. 영화를 보러 가거나 쇼핑을 하는 등 일상생활에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경주트랙에서는 수퍼카와 같은 성능으로 달릴 수도 있는 차이다. 핸들링이 약간 부드럽지 못한 불편함이 있기는 하지만 페라리 중 비교적 값이 저렴하여 대중화에 성공한 모델이기도 하다.
 

 
포르쉐 993 트윈 터보 (1996-1997)
1987년 출시된 포르쉐 959를 계승한 모델로 포르쉐 911 터보 S라고도 불린다. 1996년 데뷔한 993은 포르쉐 차 중 첫 양산 4륜구동차로 수평대향형 공냉식 6기통 엔진과 한 쌍의 터보차저를 장착하고 있다.
993에 장착된 엔진은 블록과 헤드, 피스톤을 모두 알루미늄으로 만들어 경량화했으며 엔진에 연결된 터보차저는 양쪽 모두 인터쿨러를 가지고 있어 엔진 출력을 408마력까지 올릴 수 있다. 993의 터보차저는 다른 어느 차보다도 적은 양의 배기가스를 배출하면서 가속과 제동 성능이 911보다 뛰어나 시속 100km에 도달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3.7초, 최고속도는 시속 290km까지 낼 수 있다.
외형적으로 두 가지 큰 특징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지름이 18인치나 되는 휠을 속이 훤히 보이게 제작하여 휠 사이로 붉은색 브레이크 캘리퍼가 드러나 보이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고래 꼬리 같은 인상을 주는 대형 스포일러이다. 이 때문에 '웨일 테일(whale tail)'이라는 애칭이 붙여지기도 하였다
핸들링은 클래식 포르쉐처럼 힘있고 부드러워 직선 거리를 달릴 때에는 로켓과 같은 느낌을 주며, 4륜구동 시스템 덕분에 어떠한 기후 조건에서도 완벽한 주행을 할 수 있게 해준다.
총 5,978대가 생산되었다.

 


페라리와 포르쉐는 스포츠카라는 궁극적인 목표는 같지만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페라리는 화려한 스타일링을 바탕으로 어디에서나 주목받는 모델이었고 포르쉐는 거의 변화없는 스타일에 전통과 우직함으로 승부를 건 모델이었다. 페라리는 250GT, 365GTB, 512BB, 테스타로사, 456GT, 디노, 테스타로사, 550 마라넬로 등 차명을 바꾸면서 스타일을 계속 바꾸어 왔다. 그에 비해 포르쉐는 최초 356 시리즈에서 911 시리즈로 발전했고 911 시리즈는 그 범주 안에서 모델 체인지를 계속해 오면 현재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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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트루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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